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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들어보신 말 중에 제일 최악의 폭언은 무엇인가요? 폭언은 정말로 한 사람은 홧김에,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말로 했겠지만 들은 사람은 자존감이 낮아지고 무기력해지고 한도 없이 우울해지게 만드는 것 같아요. 마치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요.


저는 전의 글들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필리핀에서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한 여자입니다. 한국에서도 유아교육학과는 과 특성상 취업이 쉽지만 일 강도에 비해 박봉이고 수많은 과제와 팀플 그리고 한 성별만 (여초) 상대적으로 많은 과다 보니 선배와 교수의 정신적 신체적 괴롭힘인 속히 말해서 ‘태움’ 이 있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이것은 필리핀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아니 심하면 더 심했다 할까요?

하지만 저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어릴 적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힘든 일이 있어도 이 악물고 이겨내고 학교를 다녔고 어느덧 3학년이 되었습니다. 2017년 6월, 저는 제 일생에서 절대로 만났으면 안되는 교수라는 이름의 못된 악질인 여자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과 특성상 아이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이유로, 모의 수업 뿐만이 아닌 심지어 팀플이나 개인 리포트를 쓰는 등 과제를 할때도 그 교수는 학생들에게 유치원생들처럼 시끌벅적 활발하게 떠들면서 할 것을 원했고 본인 성향에 맞지 않는 학생을 따돌렸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밖에서 뛰어노는 것보다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하는 차분하고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현재도 많은 친구들보다는 마음 맞는 친구 세네명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고요. 이러한 저는 그 교수의 따돌림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과에서 유일한 외국인 학생이니 저는 더더욱 좋은 먹잇감이 되었겠죠.

이 때부터 졸업 때까지 거진 2년 동안을 정신적인 괴롭힘에 시달렸습니다. 강의 시간에 영어를 쓰지 않고 현지어인 따갈로그어를 쓰고, 제가 못 알아듣겠다고 말하면 수업도 못 알아들으면서 학교를 왜 다니냐고 했고, 다른 학생들이랑 대화를 하다가 제가 강의실에 들어서서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면 의도적으로 저를 무시했고, 제가 점심 때 시리얼을 먹으니깐 밥도 안 먹냐고, 그래서 제가 어느 날은 김치볶음밥을 싸가서 먹으니깐, 드디어 ㅇㅇ이가 밥을 먹었다, 얘들아 만세! 이런 식으로 망신을 주고.... 제일 최악이었던 건 저보고 항상 무표정이라고 뭐라 하길래 자주 웃었더니 이번에는 또 맨날 웃고 다닌다고 뭐라고 하고,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인신공격과 차별을 강의 시간에 대 놓고 했습니다. 학과장에게 말해도 효과 없었고, 법 자체가 자국민 편이여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죠.

날짜까지 기억하네요. (다이어리를 봐서 그럴 수도 있지만) 2018년 4월 17일은 제가 발표를 하다가 그 교수에게 인신공격을 당한 날입니다. 정확히 무엇으로 혼났는지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안했습니다만, 확실히 기억나는 건 발표 과제를 내 줄 때 따갈로그어로 말해서 제가 모르고 조사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없다고 발표 도중에 속히 말해서 dog 망신을 줘서.... 정말 그 날은 발표를 어떻게 끝냈는지 아직도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 교수는 저 같은 사람은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고, 더 연구하고 싶어서 교육대학원에 진학해서 더 많은 걸 배우고 공부하고, 대학원 졸업 후에도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유아용 교구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거나 해서 제 꿈을 이어나갈 거에요!

필리핀 정말 낭만적인 나라고, 사람들도 대부분 순박하고 여유가 넘치는 나라입니다. 근데 이런 몇몇 쓰레기들이 있는 건 어쩔 수 없고요. 이런 쓰레기같은 교수에게 당할 때에도 저에게 잘 대해 주시는 다른 교수님들을 보고 그나마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여러분들도 폭언을 들었다고 절대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거나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스님이 하신 말이 기억이 나네요 ㅎㅎ 어떤 사람이 선물을 주었는데 그걸 받지 않으면 그 선물은 누구 것이냐고요. 물론 그 사람 것이 되겠죠. 폭언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부처 눈엔 부처만, 돼지 눈엔 돼지만 보인다는 말도 있죠 ㅋㅋㅋㅋ

모두 편안한 밤 되세요! 다음에는 더 밝고 행복한 이야기를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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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니다가 6학년부터 필리핀에서 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공교롭게도 다닌 학교가 죄다 여학교였습니다. 😂 지금은 12학년제로 학제가 바뀌었지만 (2016년부터 실시)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7년에 필리핀의 학제는 초등학교 6년(7년인 학교도 있었음)- 고등학교 4년 이었습니다. 즉 중학교가 없고 10 혹은 11학년제였죠. 학제조차 통일이 안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고등학교가 붙어있는 학교를 다녔는데요, 초등학교 7학년을 마치면 졸업을 하고 바로 같은 학교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것이었죠.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7학년, 그리고 고등학교 4년을 여학교에서 다녔고, 공교롭게도 대학마저 여대에 여초과인 유아교육학과를 나왔습니당 ㅋㅋㅋㅋㅋㅋ 정말로 한국의 여중-여고-여대 테크보다 더 심화된 버전이죠. 유치원 시절과 초등학교에서의 5년을 빼면 남자랑 같이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으니...

성인이 되어서도 첫 남자친구와 너무 안 좋게 헤어지고 대학에서도 과 특성상 수많은 과제와 한 학기에 최소 27학점, 최대 29학점이라는 빡센 스케줄을 소화하다보니 일상이 학교- 집- 학교를 반복했고 미팅이나 소개팅을 나가기는 커녕 주말에도 과제를 하느라 밤을 샜었죠. 4학년때는 유치원 실습과 졸업 논문 때문에 더더욱 헬이었고요.

그래서 저 2016년 5월 16일이 참 기억에 남는 날이라고 다이어리에 표시해 놓은 것 같아요. 저 날은 처음으로 남자 사람이 제 아픈 이별 후에 저한테 관심을 보였던 날이였다고 씌여있네요. 🤣 물론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선입견을 가져서도 안 되고, 한 사람만 보고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필리핀에 부모님 없이 혼자 와 있는 유학생 남자들의 경우는 그렇게 만남에 있어서 진지하지 않거든요.

페이스북 한인 커뮤니티에서 만나서 관심을 보여왔는데요, 며칠 대화하고 실제로 만나기로 한 전날, 제게 술을 잘 마시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알콜 알러지가 있어서 한 방울도 안 마신다고 했더니 섭섭해 하는 눈치였어요. 또 필리핀은 총기 소지가 합법인 나라라서 위험하기 때문에 저는 통금이 해 질 때인 오후 5시 반이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만나면 나는 5시 반까지 집에 가야한다고 말했더니 왜 젊은 나이에 그렇게 재미없게 사느냐고 화를 내더군요. 자기는 밤 늦게까지 술집에서 같이 술 마실 줄 아는 여자가 좋다고 부모님까지 고지식한 꼰대라고 욕하길래 그대로 끊어냈습니다.

그 이후에도 저에게 관심을 보인 한국인 유학생들이 있었는데 다 저 남자처럼 행동했고, 목적은 항상 술이나 성적인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4년간은 공부에만 집중하기로 했고 전 아직까지 솔로입니다. 😔

올해 말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 필리핀 땅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는데요, 이제는 정말 좋은 남자 만나서 또래 친구들처럼 예쁜 연애도 해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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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 다이어리라니! 벌써 4년 가까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 이 노래에 얽힌 제 이야기는 앞서 올렸던 이야기들보다 다소 무거울 수 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멘토’ 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제 곁에 있었습니다. 그 분은 제 롤모델이었고 그 분 덕분에 입사하고 싶은 기업이 생겼었죠. 지금은 꿈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제 책장에는 그 모 기업 인적성검사 대비 문제집이 꽂혀 있답니다 ㅋㅋ
11월 14일은 그 분의 생신이었는데요, 그 분은 한국에 계시고, 저는 필리핀에 남아있었고, 한국 개인 전화번호를 몰랐기 때문에 카카오스토리 댓글로 생신 축하 인사를 했어요.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정성스럽게 한 자 한 자 댓글을 썼고, 예쁜 케익 사진도 골라서 올렸었죠.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그 분은 당신하고 친분이 있고, 업무적으로 관계 있는 분들의 축하 인사만 받아주셨습니다. 즉, 제 댓글만 무시하신 거죠. 못 보고 지나친거라기에는 제 댓글보다 늦게 달린 댓글에도 답글을 달아주셨더라고요.
당시 21살,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대학 새내기였고, 필리핀에서 정말 친하게 지냈던 분이여서 실망은 무척 컸던 기억이 나네요. 매주 일요일마다 카페에서 영어 공부를 하셨는데 모르는 게 있으면 저에게 물어보실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는데 말이죠. 


뭐랄까, 그 당시의 기분은 저만 모르는, 저는 감히 낄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 를 목격한 느낌이 들어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네요 ㅎㅎ
지금 조금 나이가 더 먹은 저는 사람 마음이 다 제 마음 같지는 않다는 걸 알았고, 그때보다 상처도 조금은 덜 받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 거에 비해서 상처를 주는 관계는 미련없이 끊는게 맞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정말 아팠었고, 사회생활이 다 이런 건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경험이었지만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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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보면 부끄럽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부모님이랑 어디를 가는 것을 참 싫어했었어요. 특히 쇼핑 같은 경우는 제가 맘에 드는 것을 사려고 하면 무슨 무슨 이유를 대시며 반대하시는 엄마 때문에 부모님이랑 백화점에 가면 입술이 100미터나 나와 있었죠 ㅋㅋㅋ

이 날도 부모님이랑 같이 백화점에 갔다가 의견 대립으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날이었습니다.

밀크티 소녀: 저 원피스 참 예쁘다. 사야겠다.
엄마: 저건 너무 촌스럽고 더군다나 날씬한 사람들만 어울려.


그 당시 스트레스로 인해서 많이 먹는 바람에 조금 통통했던 저는 그 말 한 마디에 폭발 직전까지 갔었고 소소한 꿈이 제발 혼.자. 아무 간섭도 없이 쇼핑하는 것이 되어버렸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독립할 나이가 되니 이렇게 간섭을 받던 날들이 그리워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PS: 흐린 날 방에 불을 켜고 찍은 데다 필터까지 더하니 손글씨 배경이 얼룩덜룩하네요 ㅠㅠ 다음에는 신경 써서 날씨 좋은 날 찍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은 자연광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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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환한 보름달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왠지 소원을 빌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시지 않았나요? 저 역시도 그랬답니다.

선미의 보름달을 들었을 때는 2016년 정월 대보름날이었어요. 제가 살고 있는 필리핀은 적도와 가까운 나라여서 보름달이 굉장히 크고 밝게 보인답니다. 매번 크고 밝게 보이는 달이지만 이 날은 유독 소원을 빌어보고 싶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나네요 ㅋㅋ 


대학교 1학년 2학기 종강을 몇 달 앞두고 있던 날, 앞으로의 학교 생활을 잘 할 수 있게,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역시 몇 년 전이 더 순수했네요. 😂🤣 지금이라면 건물주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을 텐데요 ㅋㅋㅋ
지금 저는 대학도 무사히 졸업했고,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답니다~^^ 여러분도 바라시는 모든 소원 잘 이루어지길 바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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